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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의 1008번의 실패 1009번째의 성공

by 시원한부자아빠 2023.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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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창립자인 샌더스의 40대까지의 생애

흰 수염의 KFC 할아버지의 이름은 커널 할랜드 샌더스(Colonel Harland Sanders)다. 샌더스가 1950년대 중반 KFC를 창업할 당시 나이는 66세였다. 당시 낡은 포드 자동차, 105달러, 7개 섬에서 채취한 11종류의 허브와 스파이스 배합의 치킨 양념이 가진 것 전부였다. 샌더스는 3남매 중 장남으로서, 6세 때 부친이 사망하고, 10세부터 농장일을 시작했다. 이후 28세까지 이리저리 전전했는데, 굽히지 않는 성격을 가진 다혈질이었다. 샌더스는 16세 때 나이를 속여 군대에 입대하였고, 이후 서던 철도, 노포크 앤드 웨스턴 철도, 일리노이 센트럴 철도에서 일하다가 변호사를 개업했고, 다시 펜실베이니아 철도, 푸르덴셜생명 보험 영업을 했다. 보험영업 당시 담당 구역에 대해서 계약이 이뤄진 사실이 없었는데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영업을 해서 최고 실적을 올렸다. 이후 램프 제조, 판매를 하며 많은 매출을 올리다가 다른 성능이 좋은 램프가 나오면서 생애 첫 파산을 하게 되었다. 당시 시대를 읽는 눈이 없어 파산한 것이다. 이후 미쉐린 타이어 영업을 했으나, 회사가 경영악화로 폐쇄되었다. 이후 샌더스가 타이어 세일즈를 할 때 성실성을 눈여겨본 석유 대리점 지배인으로부터 주유소 일을 제안받았는데, 그때 샌더스 나이가 29세였다. 샌더스는 니콜라스 빌에서 주유소 대리점을 운영할 당시 최상의 서비스 제공하였으나, 그의 나이 39세에 대공황 여파로 파산하게 된다. 이후 켄터키 주 남서부 코빈에서 주유소를 다시 개업하자, 샌더스의 서비스 소문을 듣고 셸오일 책임자가 주유소 운영을 맡겼다. 샌더스는 주유소와 식당을 함께 운영하는 샌더스 카페를 탄생시켜 이후 10년간 승승장구했다. 모텔업까지 병행하다가 40세에 20세 아들을 잃고, 결혼 39년 만에 이혼을 했다. 1935년 켄터키 주로부터 커널이라는 명예 호칭을 수여받았는데, 이는 지역사회에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한 호칭이었다. 샌더스는 평생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주방사람들에게도 엄격히 금지하였다.

샌더스 66세에 KFC를 만들다

1939년 샌더스가 운영하던 레스토랑과 모텔 불탔고, 2년 후 재기해서 다시 142석 레스토랑 만들었다. 그로부터 또 1년 후 샌더스는 KFC의 맛을 완성했다. 샌더스는 압력솥을 이용하여 30분 조리시간을 단축했다. 7개 섬에서 채취한 11종류의 스파이스와 허브의 최종 배합법은 현재 KFC 본사 금고에 보관 중이다. 배합법의 마지막 공정은 기밀유지와 표준화를 위해 컴퓨터로 관리된다. 샌더스는 59세에 좋은 아내 클라우디아와 재혼했다. 샌더스는 자신의 음식에 대해 1008번의 거절을 견뎌냈다. 샌더스는 식당을 떠돌며 방문판매를 한 것이다. 켄터키(Kentuchky)는 인디언 체로키 족의 말로 황무지란 뜻이다. 샌더스는 25년간 운영한 가게를 7만 5,000달러에 경매처분하였는데 밀린 월급, 세금 등을 내고 105달러만 남았다. 샌더스는 "인생 최대의 난관 뒤에는 인생 최대의 성공이 숨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1년 동안 7건의 프랜차이즈 계약이 성사되었다. 피터 허먼은 샌더스와 아는 사이였는데, 샌더스가 4시간 동안 요리를 준비해서 밤 10시에 피터 부부에게 KFC를 대접했다. 피터 부부는 불평 한마디 않았고, 피터 허먼이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라고 명칭을 만들어 주었다. 샌더스는 피터 허먼과 최초의 KFC 프랜차이즈 계약 체결했는데, 계약내용은 KFC 1피스당 4센트로 계산했다. 샌더스는 하얀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맨 마네킹이 있는데 이는 서던 철도회사 시절 즐겨 입었던 옷이다. 샌더스는 청결을 상징하는 흰색 선호하였고 약장사 스타일로 홍보를 했다.

KFC의 성공요인

샌더스의 큰딸 마가렛의 제안으로 테이크아웃 방식을 최초로 도입해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KFC는 주방과 조리기구의 표준화를 했다. 1963년 영국에 점포를 최초 개설했는데, 이때 샌더스의 나이가 73세였다. 미국 내 600개 점포가 초과된 상태였다. 샌더스는 피터 허먼에게 유타 주의 비즈니스 권리 전부를 양도했다. 피터 허먼은 KFC의 비즈니스 성공요인을 사람이라고 했다. KFC는 1964년 연간 3,700만 달러의 매상을 올렸다. 이후 존 브라운 주니어와 잭 머시라는 갑부가 접근해서 KFC의 몇 개 점포를 제외한 모든 권리를 일시금 200만 달러, 4만 달러 연봉에 양수해 갔다. 현재 KFC는 얌! 브랜드 소유다. 얌(yum)은 맛있다는 뜻이다. 샌더스는 "누가 CEO가 되든, 조직이 어떻게 변하든 나는 상관없다. 하지만 단 하나, 음식 맛이 떨어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라고 했다. 샌더스는 80세에 매년 출장을 80만 km나 다녔는데, 이 거리는 미국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80회 정도 왕복한 거리였다. 1980년 12월 16일 샌더스는 90세에 사망했다. 올바른 길을 가면 성공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왜 쉽고 편한 길이 아니라 고지식한 길, 정도의 길로 가는 걸까? 그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 편한 길을 어려워지고, 처음 어려운 길은 나중에 평탄해지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KFC의 저주가 있는데 1985년 일본 한신 타이거즈 재팬시리즈 우승 후 젊은이들이 도톤보리 강에 샌더스 상을 집어넣은 사건 이후 한신은 재팬시리즈 우승 못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2023년에 한신이 우승해서 이 저주는 풀렸다. 괴테는 파우스트 2부를 76세에 시작했고, 클로드 모네는 76세 때 "수련"이라는 연작을 그렸으며,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는 83세에 생애 최고의 명품을 만들었고, 세르반테스는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58세에 감옥에서 "돈키호테" 집필을 시작했으며, 코코 샤넬은 71세에 다시 디자인샵을 개설해서 크리스티앙 디오르 등과 경쟁을 했다. 이러한 예를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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