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보는 사회학, 3개의 마을 주인공들
이 책은 3개의 마을로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첫 번째 마을은 관용의 마을입니다. 이곳은 어른들의 가르침대로 살거나 또는 가르침대로 살지 않아서 공경에 처한 동화 주인공들이 살고 있습니다. 바로 양치기 소년, 피노키오, 아기돼지 삼 형제 등입니다. 이들의 어리석고 무책임해 보이는 선택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저자가 이들을 대신해서 변명해 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마을은 일탈의 마을 이곳은 진리와 규범을 벗어던진 동화 주인공들이 살고 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토끼, 빨간 모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주인, 분홍신을 탐낸 소녀, 개미와 베짱이의 베짱이가 있습니다.
세 번째 마을은 지혜의 마을입니다. 이곳은 공주들이 좀 많이 삽니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또 야수를 사랑한 미녀 벨 등이 있습니다. 이야기들 속에 숨어 있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짜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약간의 페미니즘적인 해석도 볼 수 있습니다. 듣고 보니 모두가 다 익숙한 주인공들입니다.
이 시대의 백설공주는 육아에 찌든 엄마들이다
먼저 이 책 제목처럼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줄까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백설공주가 외로웠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난쟁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일하러 가고 깊은 숲 속 이웃도 없고 친구도 없고 집안일만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백설 공주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무척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 그 나이에 집 안에 갖춰서 가사노동만 하는 건 가혹한 일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대문을 똑똑 두드린다면 아무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해도 호기심 때문에 문을 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외로움에 유폐된 상황과 비슷한 이 시대의 백설 공주는 바로 어린아이들을 양육하는 엄마들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를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서 독박 육아를 하는 건 당연히 힘든 일입니다. 몸의 피로는 물론 정신적인 결핍까지 옵니다. 엄마는 아이의 100일이 지나고 드디어 밖에 나가니까 모르는 사람들 뒤통수만 봐도 "사람이다" 막 이러면서 너무 반갑게 굽니다.
이렇게 외로움에 유폐된 엄마들에게 두 가지 독사과의 유혹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예 교육에만 전념하거나 또 하나는 쇼핑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교육에 열을 내고 카드를 긁어도 친밀한 우정의 결핍에서 오는 허무함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어렵지만 용기를 내서 누군가에게 외롭다, 심심하다, 놀러 와라, 문자든 전화든 해서 스스로를 유폐시키지 않았으면 합니다. 스트레스가 좀 쌓이고 일이 잘 안 풀릴 때 평소에는 잘 안 먹는 비싸고 좀 좋아하는 디저트를 아들이랑 안 먹어고 친구랑 먹으면 좋습니다. 가끔은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음식을 나누는 것이 삶에 정말 큰 활력이 됩니다.
왕비와 관계의 프레임, 라푼젤과 진화 심리학
한편, 왕비는 왜 자꾸 거울만 보고 거울의 말만 믿었는지에 대하여 이것 역시 저자가 관계의 프레임으로 해석해 봅니다. 왕비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배신 상처,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서 안전한 거울의 방으로 숨어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거울이 온기와 애정이 담긴 사랑과의 대화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배신당하고 싶지 않아서 관계를 회피할 때가 있습니다. 약간의 갈등이 생기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할 때 우정이나 사랑이 더 깊어질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 라푼젤에 대한 이야기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남자들이 여자들의 길고 찰랑찰랑한 긴 머리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저자는 진화 심리학적인 해답을 제공합니다. 이 사람의 신체 중에 가장 선명하게 건강 상태의 척도가 되는 신체 부위가 바로 머리카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성들이 종족 보존의 본능을 따라서 건강한 모체를 찾기 위해서 건강하고 긴 머리카락을 선호하고, 여자들도 자신의 건강 상태를 과시하기 위해 머리를 기르는 쪽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진화 심리학의 설명입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공주를 구한답시고 밧줄을 하나 준비하지 않고 머리채를 잡고 기어올라가는 왕자는 참 괘씸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결말을 바꿉니다. 나는 나 스스로 머리카락을 잘라 밧줄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팔 굽혀 펴기와 윗몸일으키기로 근육의 힘을 기른 뒤 머리카락 밧줄을 타고 유유히 탑을 빠져나가느라 한결 가벼워진 머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보며 새로운 생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갈 것입니다. 혼자 힘으로 탑을 빠져나온 나인데 어떠한 일이든지 다 할 것입니다. 이 문장이 참 사이다 같이 다가왔습니다. 다른 이야기들도 정말 참신하고 재미있는 해석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